정치

[스크랩] 교과서에는 안나오는 이승만 전대통령에 관한 몇가지 사실들

남사장 2012. 4. 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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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많아서 그렇지 글은 몇 줄 안돼니 한 번 읽어 보세요~ㅋ

 

 

 

 

 

 

 

 

 

 

 

 

1. 백범 김구 암살

 

 

백범의 암살이 이승만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이승만 정권의 요인들이 백범 암살에 깊숙이 관련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특히 백범 암살 사건에 대한 처리 과정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진정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부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역 육군 소위였던 암살범 안두희는 사건 발생 48일 만에 2계급 특진하였다.

 

 

안두희는 한국전쟁 발발 이틀 뒤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가 7월 10일 중령으로 예편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1권 40쪽-

 

 

 

 

 

 

 

 

 

 

 

2. 군사 작전 지휘권 문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땅에서 거의 전적으로 중국 정부의 재정지원 아래 광복군을 조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군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중국 쪽에 넘어간 것을 치욕으로 알았으며,

 

 

끈질긴 노력의 결과 마침내 이를 되찾았다.

 

 

반면 이승만은 자전지휘권을 미국에 이양하면서 맥아더에 보낸 편지에서

 

 

"한국 국민과 정부는 귀하의 전체적 지휘를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1권 44쪽-

 

 

 

 

 

 

 

 

 

 

 

 

 

 

 

 

 

 

 

 

 

 

 

일제 시대 고등계 형사였던 조선인들,

 

 

즉 일제의 앞잡이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고 고문, 살해한 민족 반역자들이

 

 

이승만 정권에서 공산당 때려잡는 데 풍부한 경험을 지닌 전문가들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승만이 이들에게 한 말

 

 

"자네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발 뻗고 잘 수 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1권 103쪽-

 

 

 

 

 

 

 

 

 

 

 

 

 

 

 

1920년 12월 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 이승만은

 

 

대통령직에 선출된 지 무려 15개월 만에 상해에 도착했다.

 

 

그리고 5개월여가 지난 1921년 5월 말,

 

 

이승만은 일본 첩자를 따돌린다는 핑계로 훌쩍 상해를 떠났다.

 

 

1925년 3월 마침내 의정원은 탄핵 결의로 대통령직에서 축출될 때까지 66개월 동안,

 

 

그가 정부 소재지인 상해에 체류한 기간은 재임 기간의 '10분의 1' 에도 훨씬 못 미쳤다.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3권 135쪽-

 

 

 

 

 

 

 

 

 

 

 

 

이승만은 원래 3,1운동 직후 결성된 상해 임시 정부에서는 국무무총리로,

 

 

한성 정부에서는 집정관 총재로 선출되었다.

 

 

이승만을 정부 수반으로 선출한 두 정부 어디에도 대통령이란 직제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승만은 자신을 '대통령' (President) 으로 칭하며 다녔다.

 

 

안창호는 상해 임시정부는 국무총리제, 한성 정부는 집정관 총재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어느 정부에나 대통령 직명이 없다면서,

 

 

현행 헌법하에서 이승만이 대통령 행세를 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는 경고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이승만은

 

 

"이미 대통령 명의로 각국에 국서를 보냈으니

 

 

문제제기를 해서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 일치를 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면

 

 

독립운동에 큰 방해가 될 것이며,

 

 

그 책임이 당신들에게 돌아갈 것이니 떠들지 마시오."라는 오만한 답장을 보냈다. ....

 

 

 

 

 

 

 

 

 

 

 

안창호

 

 

 

..........상해 임시정부의 총재 이동휘는 제발 헌법을 존중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한 이승만의 답변은 참으로 걸작이었다.

 

 

"헌법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아직 헌법을 읽어보지 않았노라고...."

 

 

원래부터 이승만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던 괄괄한 성격의 이동휘는 

 

 

바다 건너에서 그런 소리를 해대는 이승만을 보고

 

 

"대가리가 썩었다"고 펄펄 뛰었다.

 

 

이승만을 통합 임정의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당대의 인격자 안창호조차 이승만을 가리켜 '정신병자'라며 진저리를 쳤다.

 

 

이동휘는 저런 대통령 밑에서는 총리 못해먹겠다며 상해를 떠났다.

 

 

 

-한홍구의 대한민국史 3권 137쪽-

 

 

 

 

이동휘 

 

 

 

 

 

 

 

1908년 일본의 한국 지배는 정당하다는 망언을한 스티븐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정명훈장인환이 저격한다.

 

 

이에 미주 한인들을 체포된 이들을 구하기 위해 한 푼 두 푼 모아서

 

 

당시 하버드 석사학위를 딴 이승만에게 이들을 변호해 줄것을 부탁한다.

 

 

최고급 호텔이 아니면 안된다는 조건에

 

 

미주한인들은 또 부랴부랴 최고급 호텔에 머물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그런데 재판 하루 전날 

 

 

 " 나는 현재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며 기독교인이기에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 고 말하고 사라진다.

 

 

 

 

 

 

 

 

 

 

 

 

 

 

출처 : 알싸 사진방 박찬호와 킨님

 

 

 

 

첨부파일 Beyond Hope.swf

 

 

출처 :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글쓴이 : 맨유팀닥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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